2019년 강연모음

190517 제159차_ 담백하게 산다는 것 (양창순 원장, 양창순 신경정신과, 대인관계클리닉)

조회수 432

이번 159차 새통사 모임은 ETRI명사초청강연과 제5회 ETRI인문학심포지움-지혜융합에서 초청한 신경정신과 전문의이신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님(마인드앤드컴퍼니 대표)과 함께 <담백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스트레스 점철되는 현대인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은 오뉴월의 단비와 같은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40여년간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하신 경험에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들을 결합하는 독특한 설명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명쾌함을 더해 주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말씀하시는 사례 하나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짓고 공감하며 조근조근 풀어주시는 처방(?) 하나 하나가 아등바등 사는 연구자들과 현대인들에게 말 그대로 맑은 순백의 평정심으로 길을 알려주는 선명한 이정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ETRI 내부의 다소 복잡한 사정으로 함께 치르진 ETRI명사초청강연과 제5회 ETRI인문학심포지움-지혜융합의 1차 행사와 함께 통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생소한 ETRI인문학심포지움-지혜융합을 잠시 소개하고 가겠습니다. ETRI에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중에서 ETRI연구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60분의 거장들과 친구가 되어 거장들의 지식을 도둑질 해보자는 취지를 가진 <프로젝트60>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프로젝트60>은 한 분야에서 입신(?)의 경지에 오르신 거장들을 1회성 강연으로 끝내지 않고 사전에 그 분들의 저서들을 읽고 함께 공부한 후에 강연을 듣고, 강연 후 거장들과 식사를 하면서 보다 심층적인 질의응답시간과 친교의 시간을 가지는 활동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TRI에서는 이런 <프로젝트60>의 활동을 ETRI 전 구성원들과 보다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거장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하여 <ETRI인문학심포지움-지혜융합>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습니다. 

  

양창순 원장님은 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 전문의로서 의학계에서도 폭넓은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SBS의 「양창순의 라디오 카페」, CBS의 「양창순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등의 프로그램과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100회 이상 「심리 클리닉」을 진행하시는 등, 기업 강연, 대인관계 및 리더십 컨설팅, 집필과 칼럼 기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대중활동을 펼치고 계시는 것이 인상적이십니다. 뭐니뭐니해도 양 원장님의 유니크니스를 이야기하는 데는 <주역>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점을 치는 주역을 공부했다는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날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자신의 사주를 굳게 믿는 불안해서 살수가 없다는 환자를 앞에서 그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처방약이 소용이 없는 것을 보며 사주 앞에 서양의학의 무기력함을 절감하고 뒤늦게 동양학을 공부하여 주역의 괘와 정신의학을 접목시키는 선구자적인 성취를 이루어내셨습니다. 보통의 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일종의 물리적 법칙인 사주를 통하여 극복하는 방법론을 구축하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신과 상담을 하지 전에 사주를 물어 보는 의사가 바로 양창순 원장님이십니다. ^^* 

참고로, 양 원장님의 저서로는 40만 베스트셀러이자 인간관계 심리학의 바이블인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와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CEO, 마음을 읽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 『엄마에게』 등 있습니다. 오늘 강연해주시는 주제도 책으로 나와 있음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1. 무엇이 삶을 힘들게 하는가? 

-양창순 원장님은 강연의 시작에 ..요즘 당구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현대의 아버지들이 저을 붙일 때가 없어 당구장에서 모인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일 잘하고 잘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우신 아버지들이 집에 모면 아내들은 자신의 서툼에 잔소리, 센서없음에 잔소리, 자식들은 아예 말도 섞지를 않는다. 심지어 아빠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소리 지른 것 말고 해 준 것이 무엇이냐는 볼맨 소리들만 늘어놓는다. 내 집이건만 내 마음 하나 쉬고 맘 편히 뉠 공간이 없다. 학교 다닐 때 한번 해보지 않는 사람이 없는 대중 스포츠 당구. 또래의 친구들이 공통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 멀리가지 않고 동네에서도 즐길 수 있는 놀이. 당구장이 그렇게 늘어간다는 말씀이시다. 한솥밥을 먹고 사는 식구들과의 관계도 이렇게 어려운데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삶의 현장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실제 설문조사의 결과도 그렇다고 이야기 한다. ‘무엇이 가장 힘든가‘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말씀해 주신다. 86%가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답한다고 한다. 

-사람은 주변환경에 1차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이 있고, 2차적으로 반응하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알고 있다. 사람의 뇌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파충류의 뇌와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0차적으로 파충류의 뇌에서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익숙하고 낯선 것을 구별하려 하고, 1차적으로는 변연계가 작동하며 자극에 따른 감정이 유발되고, 2차적으로는 신피질에서 지연된 보상을 기반으로 하는 최적이 대응술을 담당하는 이성이 작동한다고 배우고 또 알고 있는 것이다. 감정은 통(痛)과 쾌(快), 즉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따라 아프고 즐거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험 치에 따라 자극에 대한 반응을 만들어내는 고등통계다. 리사 배럿 박사는 이런 의미에서 감정을 사회성의 실제화 (Social reality)라고 정의한다. 조금 더 진도를 나아가면 본능으로만 알고 있던 감정은 사실 역사에 역사를 더해 진화적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계승되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있기에 우리는 본능이라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하며 내가 나타내었던 감정과 그 결과의 통과 쾌의 정도에 따라 이성은 지속적인 학습을 최적이 대응책을 만든다. 그 대응책의 일환으로 감정의 스펙트럼도 조절된다. 0차적인 반응의 결과 1차적인 반응의 결과 2차적인 반응의 결과를 종합하며 사람은 감각의 지평을 발전시켜 나가며 진화해 나가는 엣지있는 동물이다. 

-뇌의 동작 메카니즘을 조금 더 고찰해보자.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나에게 익숙하고 좋은 것만을 취사선택한다면, 더 이상 뇌 속에 새로운 기억이 들어올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의 다양한 감정을 읽을 기회를 잃어버린다. 점점 더 지극히 좁은 나의 세계를 만든다. 나이 세계가 좁으면 좁은 만큼 타자를 이해하는 폭이 좁아진다. 상대가 왜 나와 같지 않느냐에 갈등하며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이런 토대 위에서 양원장님의 말씀을 쫓아 가보자.

-양 원장님은 타자를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하시면서, 사람을 하나의 우주로 비유하신다. 사람은 137억년의 진화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커다란 우주라는 말씀이시다. 거대한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대한 우주를 만나는 것과 같으니,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이 그것도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좁디좁은 감각의 스펙트럼으로, 좁디좁은 감정의 스펙트럼으로, 좁디좁은 이성의 스펙트럼으로 타자의 더 넓은 우주를 이해하겠다는 것은 과욕이지 않겠는가. 과하다는 것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다. 힘들 수밖에 더 있게나.

-한가지 더 답을 주신다. 그러면서도 사람과 사람과의 그 어려운 관계 맺기에서 만점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 한두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서 실패했다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과잉의 마음이 바로 우리를 힘들게 하다. 내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점이 다른 친구에게 반드시 맛있을리 없지만 우리는 그런 친구를 보면 속상해 한다. 거대한 우주끼리 맞나 두 우주가 결맞음을 이룰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관계 맺기가 어려운 것이 팩트요 진실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의 만점은 50점이라고 하신다. 만점이 50점인데 60점 80점 100점 받으려는 심리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모두가 나의 욕심이다.

  

-또 있다. 우리는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불안감도 우리를 힘들게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우리를 힘들게 한다. 실수에 집착하며 스스로에게 유독 완벽함을 추구하며 힘들어 한다. 남의 뒷담화에 맛을 들이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소중한 현재를 헛되이 보낸다. 

  

2. 삼시세끼 밥만 먹지 말고 마음먹기도 하자. 

-양 원장님은 힘든 삶을 이겨내는 처방전이다. 세상사 모는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밥 먹듯이 마음먹기를 하자는 말씀이 생소하나 상큼하게 다가온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발동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발동시킨다는 것은 soft state mechanism에 따라 작동하는 감각의 문을 나의 의지로 열어 제친다는 것이다. 나의 의지로 감각의 문을 열어 제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타자의 감정이 읽힌다. 타자의 표정이 읽힌다. 타자의 의도와 맥락이 읽힌다. 감각의 지평이 확대하고 감정의 지평이 넓히고 이성의 폭이 팽창시킨다는 말씀과 같은 이치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뇌 속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평정심을 발휘하기 어렵다. 어떠한 외부의 자극에도 우왕좌왕하지 않는 것은 다양한 자극에 대해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다는 의미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수많은 자극들간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은 자극들의 종류를 세세하고 구분하고 이것들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와 정돈의 깊이와 폭이 깊고 넓다는 것이다. 정도와 정돈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은 자신이 읽을 수 있는 감정도 잘게 쪼개어 읽을 수 있고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도 잘 쪼개어 표현할 수 있다. 

-양 원장님은 또 ‘완벽이 아닌 최선이 답이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너도 나도 이번 생은 처음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발을 들여놓은 것인데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변화는 오직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고 하신다. 있는 그대로를 맞이하는 한걸음이지 싶다. 우주처럼 깊고 넓은 인간을 제대로 알아가려면, 결국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는가.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대로, 나쁜 경험은 나쁜 경험대로, 모든 경험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주춧돌이다. 

-담백하다는 것을 ‘물을 끓여(淡) 맑게(白)만든다’는 뜻이다. 불순물을 없앤다는 뜻이다. 진화의 결과인 생물학적 메카니즘에 매몰되지 말고 의지를 발동하여 있는 그대로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을 말함이지 싶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때, 타자를 보다 더 촘촘하게 이해하게 되고 타자와 담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싶다. 그런 의지력의 발동은 역시 마음 에너지에 달린 것 같다. 

-양원장님은 그런 마음에너지의 저축을 위하여,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으라고 말씀하신다. 스마트폰 속의 남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시간을 사용하라고 하신다. 하루 5분이고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자신의 내면과 솔직하게 직접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유하신다. 사람들이 돈과 시간에 대서는 낭비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자신의 감정 에너지를 스마트폰속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에 소진하는 것은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이 시간에 존재하는 나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마음 에너지를 저축하는데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신다.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곧 마음 에너지를 저축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자신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동시에 남들도 나를 그렇게 봐 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다고 하신다. 바로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이란다. 지금 이 순간, 나아가 매 순간 나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것도 마음 에너지를 저축하는 일이지 싶다.

  

3. 무엇이 출연연의 삶을 힘들게 하는가

-양원장님께서 말씀하시는 담백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물리학 법칙의 최소 작용의 원리에 순응하며 사는 방법일지 모르겠다.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 없이 최적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곧 세상의 그 어떠한 것들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껴서 적절한 대응을 해주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으로 정말 담백하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일까? 양 원장님의 강연 중에 마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5단계 말씀을 하시면서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보편적으로 깔려 있다고 하신다. 욕구 5단계의 특징으로 낮은 단계가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높은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고, 높은 단계의 욕구가 채워지면 낮은 단계의 욕구의 달성여부를 묻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 말씀에 시비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왜, 존경의 욕구와 자아 실현의 욕구에 대한 보편성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일어난다. 

-어쩌면 사회시스템의 발전 단계에 따라, 그 사회의 보편적 욕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사회시스템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사회에서의 인간들의 보편적 욕구는 안전의 욕구가 되고, 사회시스템이 안전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사회에서는 사랑과과 인정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보편적 요구로 부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싶다. TV 속 세계테마기행에 나오는 아프리카 빈국의 어느 시골에 부모도 없이 어린 세 동생을 돌보며 사는 형이 하루하루 막노동을 해서 하루 한끼 죽을 겨우 먹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서 안전의 욕구가 보편적 욕구일까 생리적 욕구가 보편적 욕구일까 라는 질문에 당연히 생리적 욕구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 자명해 보인다.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가 단지 개인에 국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논의가 필요하다. 부족한 사회시스템의 결여에서는 기인하는 문제가 더 큰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지금 출연연이라는 법적 자연인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목도하고 있다. 출연연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출연연의 스스로의 담백함 삶의 자세 결여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출연연을 들러 싼 사회시스템의 부조화 때문에 오는 것일까 라는 문제를 가지고 못해도 20여년의 시간을 끌어 왔다. 해답을 찾지 못하는 20여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국력은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슬로우의 욕구 5단계론을 사회시스템과의 관계성의 가설에 의하면, 지금 출연연의 욕구는 어느 단계의 욕구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출연연을 둘러 싼 사회시스템은 어느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인가? 아직까지 욕구단계와 사회시스템간의 관계에 대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이러한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돌아와서, 출연연이라는 법적 자연인이 담백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고민들의 시작이 양창순 원장님을 초청한 이유 중의 하나 일 것이기 때문이다. 출연연이 담백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제일 먼저 출연연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승-전-정부 탓‘을 하며 보낸 세월 동안,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진 모습은 무엇이며, 떨어질 때로 떨어진 자존감은 무엇인가 ........ ##

 

출연연 내부의 수많은 갈등들을 읽어 내시고 강연 주제를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담백하게 산다는 것‘으로 바꿔 주시는 센서에서 양창순 원장님의 담백한 삶의 한 장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쁘신 시간 중에도 먼 걸음 마다 안고 왕림하셔도 또 늦은 시간까지 <프로젝트 60>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눠주신 양창순 원장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동양물리학인 주역과 결합한 신경정신의학이 더욱 발전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