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통사 (http://newinsight.kr) 시즌13-213차 모임에는 대통령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정상조 위원장(서울대 법대 교수)께서 다녀가셨다.
1.
‘디지털 시대에서의 데이터, 인공지능, 법’이란 강연주제다. 정 위원장께서 최근에 출간하신 ‘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라는 책을 근간으로 하시는 강연이다. (그리 두껍지 않는 책이고 쉽게 쓰여진 책이라 편한 마음으로 읽다보면,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시작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도를 단박에 끌어올려 주신다. 익숙한 것에 새로운 형식이 던져지니 사람들은 몰입을 쉽지 이룬다.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 또한 에너지를 가장 적게 들이면서 편하게 비교하여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숫자의 형식을 빈다.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두 번의 형식의 도입에 대한 배치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의 변화를 쉽게 인식하기 마련인데, 그곳에 급격한 변화상을 툭 던져주신다. 사람들이 단박에 알아차린다. ‘아! 인공지능이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파괴적이구나. 뭔지 모르지만 대단한 놈이다. 중요해 보인다.’ ..사람들은 곧 바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함을 몸으로 말을 한다. 고수의 냄새를 물씬 풍겨주신다. 그런 대단한 인공지능이 뭘 보고 공부하느냐? 데이터를 보고 공부한다. 그러니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고개가 절로 끄떡여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다 조금 어렵다. 데이터는 누구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쉽게 복제가 가능한 것이라 데이터의 소유권을 지키기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많은 데이터 속에 개인의 사생활 정보나 사생활을 유추해볼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런 데이터에 대한 양면성 때문에, 인공지능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거래의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애로가 있다. 정 위원장께서는 사회규범을 다루는 법의 지향이 어디에 균형점을 두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해 주신다. 기가 강한 사람들의 출현 앞에서, 예외없이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탓에 충분한 토의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중들은 다가오는 시대에서의 이슈에 대한 이해도는 충분한 레벨에 올라갔을 것 같다.
2.
法과 工이 통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속에 法은 ‘으레 그리되는 것’을 말하고 工은 궁리하다 꾀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法은 원래 그러하다는 것을 문자로 표현한 선언이고 工은 뭔가를 마련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둘 다 어떤 사태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미리 손을 써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法이 원래 그러함을 잘못 표현하게 되면, 工과 같은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쨌던 法이 선언한 것을 工은 방법론(工法)을 고민하여 선언에 따라 사태들이 현재화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적 마련을 하는 입장이기에 法의 선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法은 또 사태들의 발생에 대한 작동과 작동조건을 다루는 工을 제대로 이해하면 ‘원래 그러함’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에, 法과 工이 가까운 것은 이로운 점이 많을 것 같다. 정 위원장께서 데이터에 관련된 법들이 ‘원래 그러함’을 제대로 선언해주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을 토로해 주신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영역의 관점에서 데이터를 바라보니, 서로 사맛디 아니함을 안타까워 하시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안타까움 때문에 본질에 다가가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충분한 토의의 시간이 있었으면, 法과 工의 세계에 대한 공감대를 토대로 서로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후기를 빙자하여 남겨 놓고 타인들과도 토의를 즐겨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디지털건축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디지털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의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 같다. 태생이 메타(meta)인 디지털을 다루는 입장에서 디지털 데이터를 메타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사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접근방법론에 항상 아쉬움을 가진다. 메타의 관점에서는 물리적인 모든 것은 메타가 다루는 수단이다. 메타는 어떠한 수단을 고안해 낼 수 있으며 고안해낸 수단을 통하여 또 다른 수단을 자유롭게 만들어 메타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메타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하는 것은 ‘원래 그러함’들에 대한 완벽한 앎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法의 선언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법의 선언은 ‘원래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있고, 그 권리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그 권리들’이 스스로 통제해야 할 범위를 정의하는데 있고, 또한 불완전한 통제의 범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충돌에 대한 중재의 기준을 정의한다. 법의 주격이 어디에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데이터라는 메타는 그 주격들이 ‘원래 그러함’을 자세히 알고자 함을 위하여 생산되는 ‘앎의 재료’들이다. 데이터는 앎의 재료이다. 메타들은 각자가 가지는 예술적 접근방법을 사용하여 데이터라는 재료로 맛있는 ‘앎’이라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요리에 대한 레시피가 알고리즘이다. 재료들이 있고 레시피가 있고 요리가 탄생했다. 현재의 저작권의 개념에는 어떤 것들이 저작권 보호 대상일까? 정 위원장께서 예를 들어 주신, 프랑스 파리의 예술공학단체 Ovious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14세기에서 20세기의 초상화 15,000여점을 학습시켜 만든 Edmond de Belamy (2018)라는 작품에 대한 저작권에 대한 이슈에서 ‘화풍’은 저작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으로부터, 레시피 또한 당연히 저작권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예에서, 어떤 불합리한 점이 발견되지 않는가? 레시피 속에 또 화풍 속에 ‘어떤 고유한 배치’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가? 만일, 레시피나 화풍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 무엇에 해당 하는 ‘어떤 고유성’을 발견해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생성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데이터 속의 프라이버시 문제 또한 이와 유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데이터 속의 고유성을 분간해내기 어렵다면, ‘고유성’이 제외된 데이터 생산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工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고유성을 뺀 데이터의 생성방법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데이터에서 고유성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도가 높다는 것을 法의 입장에서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런 접근 방식 자체가 새로운 국부창출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많다고 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아쉬움이 배가된다. 그래서 삶은 선택이라고 하지 싶다. 그 선택지 중에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를 남기고 싶다. 모두들 찾아보시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찰나의 시간이 아쉬운 분들을 위하여 설명을 조금 남기고 싶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의 결과물인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국부를 창출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과 정책을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자문하고 관련된 현안들에 대한 심의 및 조정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앞서 걸어 난 나라들의 부이 창출 방식을 인지하고, 2011년에야 지식재산법을 제정하고 지식재산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생산을 위한 체계적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국가기관이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이다. 뜻은 좋지만, 국가차원의 지식재산권 창출 방식이 국가혁신체계나 국가혁신생태계와 연동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싶기도 하다. 앞서 간 나라들을 좀 더 관찰하여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차원에서 고려해주는 것이 가장 빠른 접근이 아닐까 싶은 기대감이 불을 지른다. 바로. 가장 확실한 지식재산의 확보는 새로운 것을 확 열어 제치는 돌파구에 있다는 점에 관한 것이다. Elon Musk, Jeff Bezos, Masayoshi Son ....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연구하면 그들을 따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이 벌리는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사실은 언어 이전의 세계, 말 이전의 세계에 접근하지 않고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대상들이지만, 우리의 국가혁신체계는 그들이 일으킨 사태를 분석하면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발견한다. 고유성의 배양, 다양성의 배양에 대한 투자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Elon Musk, Jeff Bezos, Masayoshi Son 같은 선각자들이 움직여 주면, 그 때에서야 열심히 뒤 따르며 이삭줍기를 하는 방식이 여전히 지배적이지 않는가 싶다. 그들의 사유체계의 구조와 작동의 조건이 동일할 경우에만 비로소 대등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읽을 수가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국가혁신체계를 직접 관장하지는 않지만, 혁신의 문화나 생태계의 진화를 리딩해 갈 수 있는 높은 시선이 있지 않을까 싶다.
새통사 운영진에서 정상조 위원장님과의 후속 Online Meeting을 준비한다고 한다. 많은 참여와 보다 깊고 다양한 시선 나누기가 기대된다.
@새통사 (http://newinsight.kr) 시즌13-213차 모임에는 대통령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정상조 위원장(서울대 법대 교수)께서 다녀가셨다.
1.
‘디지털 시대에서의 데이터, 인공지능, 법’이란 강연주제다. 정 위원장께서 최근에 출간하신 ‘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라는 책을 근간으로 하시는 강연이다. (그리 두껍지 않는 책이고 쉽게 쓰여진 책이라 편한 마음으로 읽다보면,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시작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도를 단박에 끌어올려 주신다. 익숙한 것에 새로운 형식이 던져지니 사람들은 몰입을 쉽지 이룬다.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 또한 에너지를 가장 적게 들이면서 편하게 비교하여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숫자의 형식을 빈다.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두 번의 형식의 도입에 대한 배치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의 변화를 쉽게 인식하기 마련인데, 그곳에 급격한 변화상을 툭 던져주신다. 사람들이 단박에 알아차린다. ‘아! 인공지능이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파괴적이구나. 뭔지 모르지만 대단한 놈이다. 중요해 보인다.’ ..사람들은 곧 바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함을 몸으로 말을 한다. 고수의 냄새를 물씬 풍겨주신다. 그런 대단한 인공지능이 뭘 보고 공부하느냐? 데이터를 보고 공부한다. 그러니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고개가 절로 끄떡여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다 조금 어렵다. 데이터는 누구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쉽게 복제가 가능한 것이라 데이터의 소유권을 지키기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많은 데이터 속에 개인의 사생활 정보나 사생활을 유추해볼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런 데이터에 대한 양면성 때문에, 인공지능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거래의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애로가 있다. 정 위원장께서는 사회규범을 다루는 법의 지향이 어디에 균형점을 두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해 주신다. 기가 강한 사람들의 출현 앞에서, 예외없이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탓에 충분한 토의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중들은 다가오는 시대에서의 이슈에 대한 이해도는 충분한 레벨에 올라갔을 것 같다.
2.
法과 工이 통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속에 法은 ‘으레 그리되는 것’을 말하고 工은 궁리하다 꾀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法은 원래 그러하다는 것을 문자로 표현한 선언이고 工은 뭔가를 마련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둘 다 어떤 사태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미리 손을 써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法이 원래 그러함을 잘못 표현하게 되면, 工과 같은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쨌던 法이 선언한 것을 工은 방법론(工法)을 고민하여 선언에 따라 사태들이 현재화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적 마련을 하는 입장이기에 法의 선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法은 또 사태들의 발생에 대한 작동과 작동조건을 다루는 工을 제대로 이해하면 ‘원래 그러함’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에, 法과 工이 가까운 것은 이로운 점이 많을 것 같다. 정 위원장께서 데이터에 관련된 법들이 ‘원래 그러함’을 제대로 선언해주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을 토로해 주신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영역의 관점에서 데이터를 바라보니, 서로 사맛디 아니함을 안타까워 하시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안타까움 때문에 본질에 다가가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충분한 토의의 시간이 있었으면, 法과 工의 세계에 대한 공감대를 토대로 서로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후기를 빙자하여 남겨 놓고 타인들과도 토의를 즐겨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디지털건축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디지털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의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 같다. 태생이 메타(meta)인 디지털을 다루는 입장에서 디지털 데이터를 메타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사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접근방법론에 항상 아쉬움을 가진다. 메타의 관점에서는 물리적인 모든 것은 메타가 다루는 수단이다. 메타는 어떠한 수단을 고안해 낼 수 있으며 고안해낸 수단을 통하여 또 다른 수단을 자유롭게 만들어 메타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메타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하는 것은 ‘원래 그러함’들에 대한 완벽한 앎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法의 선언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법의 선언은 ‘원래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있고, 그 권리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그 권리들’이 스스로 통제해야 할 범위를 정의하는데 있고, 또한 불완전한 통제의 범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충돌에 대한 중재의 기준을 정의한다. 법의 주격이 어디에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데이터라는 메타는 그 주격들이 ‘원래 그러함’을 자세히 알고자 함을 위하여 생산되는 ‘앎의 재료’들이다. 데이터는 앎의 재료이다. 메타들은 각자가 가지는 예술적 접근방법을 사용하여 데이터라는 재료로 맛있는 ‘앎’이라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요리에 대한 레시피가 알고리즘이다. 재료들이 있고 레시피가 있고 요리가 탄생했다. 현재의 저작권의 개념에는 어떤 것들이 저작권 보호 대상일까? 정 위원장께서 예를 들어 주신, 프랑스 파리의 예술공학단체 Ovious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14세기에서 20세기의 초상화 15,000여점을 학습시켜 만든 Edmond de Belamy (2018)라는 작품에 대한 저작권에 대한 이슈에서 ‘화풍’은 저작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으로부터, 레시피 또한 당연히 저작권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예에서, 어떤 불합리한 점이 발견되지 않는가? 레시피 속에 또 화풍 속에 ‘어떤 고유한 배치’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가? 만일, 레시피나 화풍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 무엇에 해당 하는 ‘어떤 고유성’을 발견해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생성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데이터 속의 프라이버시 문제 또한 이와 유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데이터 속의 고유성을 분간해내기 어렵다면, ‘고유성’이 제외된 데이터 생산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工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고유성을 뺀 데이터의 생성방법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데이터에서 고유성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도가 높다는 것을 法의 입장에서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런 접근 방식 자체가 새로운 국부창출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많다고 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아쉬움이 배가된다. 그래서 삶은 선택이라고 하지 싶다. 그 선택지 중에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를 남기고 싶다. 모두들 찾아보시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찰나의 시간이 아쉬운 분들을 위하여 설명을 조금 남기고 싶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의 결과물인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국부를 창출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과 정책을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자문하고 관련된 현안들에 대한 심의 및 조정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앞서 걸어 난 나라들의 부이 창출 방식을 인지하고, 2011년에야 지식재산법을 제정하고 지식재산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생산을 위한 체계적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국가기관이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이다. 뜻은 좋지만, 국가차원의 지식재산권 창출 방식이 국가혁신체계나 국가혁신생태계와 연동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싶기도 하다. 앞서 간 나라들을 좀 더 관찰하여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차원에서 고려해주는 것이 가장 빠른 접근이 아닐까 싶은 기대감이 불을 지른다. 바로. 가장 확실한 지식재산의 확보는 새로운 것을 확 열어 제치는 돌파구에 있다는 점에 관한 것이다. Elon Musk, Jeff Bezos, Masayoshi Son ....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연구하면 그들을 따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이 벌리는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사실은 언어 이전의 세계, 말 이전의 세계에 접근하지 않고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대상들이지만, 우리의 국가혁신체계는 그들이 일으킨 사태를 분석하면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발견한다. 고유성의 배양, 다양성의 배양에 대한 투자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Elon Musk, Jeff Bezos, Masayoshi Son 같은 선각자들이 움직여 주면, 그 때에서야 열심히 뒤 따르며 이삭줍기를 하는 방식이 여전히 지배적이지 않는가 싶다. 그들의 사유체계의 구조와 작동의 조건이 동일할 경우에만 비로소 대등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읽을 수가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국가혁신체계를 직접 관장하지는 않지만, 혁신의 문화나 생태계의 진화를 리딩해 갈 수 있는 높은 시선이 있지 않을까 싶다.
새통사 운영진에서 정상조 위원장님과의 후속 Online Meeting을 준비한다고 한다. 많은 참여와 보다 깊고 다양한 시선 나누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