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석의 강연후기

제205차_ 우리 사회에 지금 기본소득이 필요한가?

관리자
2021-05-22
조회수 363


새통사

 (Http://nwsinsight.kr) 시즌13-205차 모임에 경북대 경제통상학과 최한수 교수님께서 다녀가셨다. ‘우리 사회에 지금 기본소득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최근 우리 사회의 핫이슈에 대하여 요모조모를 살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셨다.  


1.

최한수 교수님은 코로나는 그저 동굴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었을 시간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다 주지 않았던 시간대에 조용히 ‘기본소득’에 대한 ‘명과 암’을 살펴보았다고 하신다. 현재의정치적인 상황이 기본소득에 대한 희망적인 소망이 확산되는 관계로 기본소득의 반대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암’쪽의 면을 일찍이 뒤져 본 것이 원죄가 되어, 기본소득의 ‘명과 암’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에 ‘암’의 측면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 사정을 풀어내 주신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권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기대하는 성과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한 지표에 대한 설계도 하지 않고 또한 정책시행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측면의 사태들에 대한 관찰장치의 준비도 없이, 그냥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아까운 세금의 산화되어버리는 것을 많이 목격되고 상황을 생각하면, 서로 반대되는 관점에서의 열린 논쟁 자체는 충분히 유의미한 작업들이기에, 최 교수님의 ‘암’쪽 측면에서의 다양한 데이터들과 사전 연구들의 시사점을 풀어내주는 것은 참으로 그 의미가 크다.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없이 주어지는 소득’이다. 이런 기본소득에 대한 두가지 팽팽한 입장이 존재한다. 문제는 두 입장이 어떠한 확신을 줄 수 있는 근거나 논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적극적 지지의 입장은, 향후 AI아포칼립스의 시대에 노동의 종말(?)이 예고하는 소득의 고갈(?)상황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내수경제를 운용하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정책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긴장감 완화를 통한 사회의 항상성 유지나 좀비기업이나 부도덕한 기업의 퇴출에 인한 낭비제거 등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민주적 사회 운영의 기제에 해당하는 인권 고양, 다양성 보유, 사회이동성 강화 등의 장점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반대의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인 현금 지급은 노동 의욕을 저하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해 후손들의 보다나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하여 투자해야 할 비용을 선취소비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최 교수님은 의미있는 통찰 하나를 던져주신다. 현금의 무조건적 지급으로 도덕적 해이나 급격한 노동이탈과 같은 부정적 측면을 주장할 유의미한 결과가 보고된 것은 없지만, 유의미한 결과로 포착되지 않은 미세한 노동이탈은 결국 인적자본-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에 체화되는 숙달, 지식, 창의력 등-의 축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과 유의미한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기본소득의 총액-예를들어, 5천만 국민에게 월 30만원 지급을 목표로 하면 1년에 180조 필요-은 특정한 목적세로는 충당이 불가능한 매우 큰 규모라는 것이다. 2020년도 소득세 93조 1천억, 법인세가 55조 5천억, 부가가치세가 64조 9천억 등의 규모를 보니, 기본소득의 무게가 가볍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2.

강연을 들어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문이 만들어진다. 일반의 대다수 국민들-부의 불평등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기본소득의 언저리에 ‘비 노동소득이 노동소득을 추월한 시점에서, 지대를 기반으로 하는 부의 불평등의 증폭은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형성된다. 머리 속에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지대 기반의 이익이 전체의 성장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가?’ ‘잉여의 축적 수단으로서의 지대를 대신할 다른 대안은 존재하는가?’ ‘지대 기반의 불평등에 대한 조정은 불가능한가?’ 사람에게 존재하는 본질적 차이-각자의 생각이나 태도에 따른 차이-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그 불평등의 간극을 지금의 지수적 편차보다는 훨씬 더 좁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에 관련된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서 아우성친다. 우리 사회의 문제의 핵심은 기본소득 그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의 진폭을 좁히는 것일 것이기에 그러하다. 필자는 이 좁은 진폭의 불평등의 진동을 ‘사회의 항상성’이라고 이름 붙여보고 싶다. 지구생명진화의 총아인 사람의 몸에서 작동하는 항상성의 비밀은 대단하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가운데에서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목표선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과 진폭을 다루는 방식이지 않는가. 관찰과 2차관찰, 3차관찰 등의 층위를 가지며 조절해가는 방식으로 진폭을 낮추어 가는 방식의 차용이다. 부의 불균형의 진폭 또한 충분히 조절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지대 기반의 창출되는 잉여들이 전체의 성장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은 공멸이외의 다른 결론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Human Capital 속에 첨단기술 능력을 버태는 방법은 없을까. 사회적 총요소생산성을 향상-New Human Capital의 확충-이라는 새로운 목표는 기본소득의 선취적 소비라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새로운 가치생산성을 개선을 기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게 된다. 코로나를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New Human Capital의 확충 노력을 보게된다. 어떤 도에서는 도지사가 지역민들의 농산품 판매를 위하여 쇼호스트가 되어 완판이라는 선물로 지원을 한다.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민들을 위한 스스로 쇼호스트가 되어 도민들의 총요소생산성을 지원하는 사례다. 중소기업들의 다양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바우처 지원으로 중소기업들이 총요소생산성을 지원하는 것도 다른 모습의 예일 수 있다. 이런 원시에가까운 노력에서 총요소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지원방식의 힌트를 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언제까지 이런 원시적이고 고비용의 지원방식으로는 지속하기는 불가능하다. 시대에 걸맞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고민되어야 한다. 기존 기업들의 비즈니스 활성화와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출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민간자본의 보편적 간접자본들의 확충을 유도가 필요해 보인다.


3.

다음으로는 자연스럽게 인권적 관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기업들의 해외이전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축소와 다양한 자동화의 도입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감소의 이유로 오프쇼어링(Offshoring)이나 자동화나 로봇, AI 등과 같은 첨단 기술의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들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주장들이 존재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기계와 똑같은 취급하는 일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일자리는 이제 인권적 차원에서 반드시 과감하게 지양하는 가운데 새로운 접근방식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지않았나 싶다. 지구생명진화의 결정판인 인간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가능성들의 조장만큼 불확실성 가득한 미래를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미국의 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900년대에 한 가정의 일주일간 가사노동시간이 58시간이었고 2011년에는 1,5시간이라고 한다. 100년사이에 무려 56시간이나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 줄어든 시간이 어디에 소비되었겠나를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의 생활수준과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조사보고서는, 노동의 질을 개선하고 잉여시간을 새로운 가치창출에 직간접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첨단기술의 경쟁속도를 보고있자면, 이제 가사노동의 축소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붙박이식 노동시간은 점점 더 축소될 것이 분명해보인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정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은 ‘기본소득의 시행여부’가 아니라 ‘가치생산의 한계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론을 찾는 길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의 문제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봐야 할 요모조모를 짚어주신 최 교수님 덕분으로 많은 생각을 넓혀볼 수 있었다. 새통사는 언제나 매력적인 만남이 있어 참 좋다. ^^*


ETRI 이순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