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석의 강연후기

236차_메타버스 시대와 유라시아주의 vs. 아틀란틱주의 vs. 아시안주의

이순석
2022-05-05
조회수 239

새통사의 생각잇기 브레인 Talk 시즌15, 236차 모임에는 최근 싱가폴국립대에서 비교아시아학, 지역학을 박사과정을 마친 정호재 작가님을 모시고, 메타버스 시대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터진 러시아 사태의 직면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시각의 틀을 하나 선물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 시대의 지구촌에 절대적이진 않지만 집단적인 행동철학이나 사상으로 대변되는 <주의, -ism>들이 존재한다는 시각이다. 그것이 절대적이든 개념적이든 거대한 다양성이 존재하는 지구촌을 범주화해서 읽어보는 방법론으로써는 매우 유용한 접근법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필드(場)과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場이론적으로 ‘주의’를 풀어보면, 어떤 가치들에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응을 보이는 것들을 하나의 범주로 구분지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특정한 가치들의 묶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가치들의 충돌과 화해의 동적인 상호관계들을 미리 읽어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 작가님께서 끌고 와주신 메타버스의 세계 또한 그 속에서 어떤 가치들의 지향들이 있을것인가 라는 관점으로 접근해볼 수 있으면, 다양한 새로운 질서들을 전망해볼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호재 작가님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석사를 마치고 현재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비교아시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아시아연구자이십니다. 언론사의 기자 생활을 통하여 내국인과 이방인, 주류와 경계인 예술인과 야심가 등의 다양한 사람들과의만남을 통해서 한국(K-)에 대한 여러 측면들을 읽어보는 시각을 얻고, 한국이 가진 많은 문제들을 푸는 접근방법론이 하나로 ‘아시아’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런 이후 한·중·일을 넘어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을 답사를 하면 많은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사. 더 구체적으로는 싱가포르와 미얀마를 오가며 아시아 미디어와 문명론을 연구하고 지속하고 계십니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2020년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습니다. 지은 책으로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와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가 있습니다.


 

차마고도, 실크로드, 해양, 철길, 도로, 인터넷, 우주, ... 메타버스

 

정호재 작가님은 지구촌을 크게 아시아주의, 유라시아주의, 아틀란틱주의 등으로 분류해 보인다. 현재의 국제질서가 아틀란틱주의라면, 그 직전의 국제질서는 유라시아주의가 보이고 그 직전은 아시아주의가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는 조금 더 특별하다. 문명권이 아시아, 유라시아, 아틀란틱으로 중심을 옮겨갔다면, 아시아는 그 한바퀴를 돌아 또 새로운 중심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작가님의 강연과는 달리 상상의 나래는 혼자 저만치 달려나간다.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을 생각해보면, 아시아주의를 구아시아주의와 신아시아주의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해보인다. 구아시아주의는 긴 유랑의 끝지점에서 정착한 해변문화와 반도문화를 바탕으로하는 문명권을 상상해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 끝지점에서 되돌아 바라보면서 만들어지는 내륙문화 기반의 문명권을 상상해 볼 수있을 것 같다. 내륙문화와 해변/반도문화와는 그 특징이 자연스럽게 구별될 수 밖에 없다. 유랑의 끝점들을 잇는 세력은 자연스럽게 내륙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이 담당할 수밖에 없지않겠나 싶다. 차마고도로 시작한 그 기능이 초원세력들의 주도적 역할을 기반으로 거대한 대륙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권을 탄생시켰다. 해변/반도세력들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 곧 해양문화를 낳고 또 한번의 문명권이 탄생되어 세계 질서의 중심세력이 되고, 대륙문화는 해양문화와 인접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양분이 되며, 해양문명의 아틀란틱주의와 해양인접의 유리시아주의와 내륙과 해변/반도문명이 아시아주의로 범주화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어 보인다. 그 속에 에너지의 흐름이 보인다. ‘아시아->유라시아->서구->아시아’라는 반복되는 듯한 순환고리가 보인다. 그 에너지의 이동에 에너지릐 흐름을 좌우하는 시공간의 생성과 쇠퇴가 보인다. 차마고도, 실크로드, 해양. 아틀란틱주의에서 융성한 금융제도 철길, 자동차 도로, 비행기 도로, 정보의 도로, 우주의 도로까지 과감한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그 와중에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시공간의 발견을 재빠르게 포착한 아시아는 아틀란틱이 주도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흔들며 에너지의 양분을 요구한다. 두가지의 큰 변화가 읽힌다. 아틀란틱의 에너지 축소에 따른 위기감, 에너지 축소에 따른 새로운 세계 확장의 독자적 추구의 한계성 노출이 바로 그것이다. 아틀란틱은 유라시아의 분리, 아시아의 분리책을 통해서 과거의 내륙세력의 고립을 추구한다. 아틀란틱의 해변/반도세력과의 연대와 대륙세력과의 긴장관계의 형성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런 긴강의 구도를 생각하면, 대륙세력의 돌파구는 역시 우주라는 시공간의 선점과 디지털 시공간에 대한 장악이다. 지금의 신아틀란틱세력과 신대륙세력 충돌의 시공간과 바로 일치한다.

 

이 지점에서 세가지 질문이 대두된다. 첫 질문은 해변/반도세력은 신아틀란틱에 안주할 것인가? 안주하는 것이 생존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는 것인가? 두 번째 질문은 해변/반도세력들이 어떻게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할 수있을 것인가? 세 번째는 한국이 해변/반도세력의 독자적 문명권 형성의 보편성을 확보할 수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하면, 보편성을 확보할 수있을 것인가? 등의 것이다. 사회학적 접근방법론에서는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공학적 접근방법론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구체적인 접근 대안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있지 않을까 싶다. 왜나하면, 공학적 관점에서는 세계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전망해볼 수 있는 틀과 방법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관점의 세계관은 세계의 확장 방법이 명쾌하다. 바로 새로운 시공간의 창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공간은 다름 아닌 언제나 새로운 노드들과 연결들 속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새로운 세계의 확장에 대한 출중한 능력이 누구에게있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여전히 아틀란틱세력을 따른 세력권과 문명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또는 해변/반도세력이 새로운 보편성을 지닌 문명권의 형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 확장의 방법론을 터득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와중이지만, 아틀란틱 세력은 세계확장의 기술뿐만 아니라 세계의 유지를 위한 방법론마저도 터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터득해야 할 것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또 하나의 문제가 더 있다. 세계확장과 세계유지는 스케일의 문제다. 거대규모의스케일의 완성과 유지에는 거대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우리가 그 에너지를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앞에 포기를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사의 수많은 전쟁에서 ‘교두보’라는 개념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기울어진 전세를 역전시키는 최후의 보루, 그것을 우리는 교두보라고 하지 않는가?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하느이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교두보와 그 교두보를 발판으로 하는 판짜기가 우리의 살길이 아닐까 싶다. 그 길이 보일 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미-중의 갈등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남방정책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질문들을 쏟아내놓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메타버스(Metaverse)를 우리는 어떤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에너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시공간을 어떻게 선점하고 장악할 것인가? 성공가능한 판짜기를 하고 있는가? 메타버스가 멀다면.....우주는 어떤가 우주는 그러한 판짜기가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가?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그냥 우리도 해야 된다는 것인가?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중국은 선저우 14호라는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 10우러까지. 2022년 10월까지 우주정거장 톈궁 (天宮)을 완성하겠다는 판을 과감하게 내보인다. ^^* ##

 

새로운 도전의 힘겨운 시간에도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주신 정호재 작가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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