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강연모음

080323 제118차_ 몸짓이 말하는 3감소통의 표현방식 (서윤신 대표, FCD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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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도래하는 초연결시대의 본질을 통찰하면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의 신기축을 탐색하는 새통사입니다. 

 

이번 118차 새통사 모임에서는 컨템포러리 현대무용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FCD무용단 대표로 활약하고 계신 서윤신 대표를 모시고, 무용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윤신 대표는 무용가이자 안무가(Choregrapher)로서 2012년 전국무용제에서 <그을림>의 주역 무용수로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고, 2014년 대전문화재단에서 후원하기 차세대아티스타에 선발되었고, 2015년에는 창무 국제무용제에 <Entschuldigung (실례?)> 안무가겸 무용수로 출연하였고, 2015 인천국제현대무용제 경연부분에서 <Hangman Game>의 안무가겸 무용수로 출연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말그대로 차세대 아티스타이자 우리의 보물입니다. 서윤신 대표는 일본을 출발해서 중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자신이 흠모하는 무용단에서 오랜시간 동안 해외의 무용가들이나 안무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무용이라는 예술영역에서 추구하는 것이 자신이 한 때 추구했던 ‘잘 하겠다’는 개념과는 다른 개념을 추구하고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자신만의 춤의 세계를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독일의 무용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전략적 움직임에 영감을 받아서 대한민국의 현대무용을 세계 현대무용의 메카로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로, 특히 대한민국 중에서도 대전을 그 중심지로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FCD무용단을 동료들과 함께 설립하고, 그 꿈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알게 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고전무용들이 국제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민속춤의 하나로 밖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무용에 대한 체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그 핵심이겠지만, 체계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의 열악함이 문제의 핵심이지 싶습니다. 어느 분야든 힘든 환경을 이어가는 분야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속에는 스스로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비즈니스생태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무용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독일은 새로움을 시도하는 전세계의 무용수들을 독일로 불러들여 아낌없는 지원을 통하여 ‘그 새로움의 뿌리’를 독일에 두게 하고, 그런 새로움을 독일에서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 무용의 헤게모니 장악뿐만 아니라 부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거대한 비즈니스생태계 구축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게 된 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예술’이라는 정확한 뜻을 몰라도 ‘예술’이라는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는 대부분이 잘 알고 있다. ‘아, 예술이다!’라는 말은 아마도 ‘아니 저것을 어떻게 저렇게 .....저렇게 적절하고 멋지게 표현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칠 때, 무의식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 예술이다!’ ... 이 말과 함께 전율과 같은 소름을 느낀다. 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완벽한 결맞음이 일어났을 때 자연스럽게 탄성과 함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예술’의 정의를 여기에서부터 찾아가고 싶어졌다. 

-탄성은 나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구세주의 절묘한 터치같은 순간의 쾌감이다. 마치 혼자사는 홀애비가 가려운 등을 긁지 못하고 있다고 누군가 살짝 긁을 주는 그 느낌과 같은 위로다. 그 등의 가려움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가려움의 원인만을 꼭 찝어서 해결해주는 터치는 예술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을 우리는 엣지있다고 표현한다. 엣지는 잘 갈린 칼날같이 필요한 것을 짤라내는 예리함을 가진 것을 말한다. 

-서대표님은 ‘예술’을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풀어주신다. 다시 말하면 엣지있게 제대로 건드리는 모든 것이 예술이리라. 문자언어든 음성언어든 그림언어든 행동언어든 상관없다. 무엇이든 사람의 답답함을 긁어주고 들춰내주고 공감해주고 대신 말해주는 등의 모든 것이 예술이다. 다시말해서, 예술은 사람과의 궁극의 공감을 추구하는 것이리라. 

-137억년의 우주 역사 속에 존재하는 사람, 존재하게 된 사람. 허연 단백질 덩어리 뇌라는 것이 각자의 해골바가지 속에서 바깥세상이 얼마나 궁금할까....오감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극들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몸뚱아리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 알리는 태생적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존재. 그 존재가 추구하는 것은 끝없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리라 반대로 타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리라. 나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남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오감을 통한 감각의 번역과정이 필요하고 또한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많은 행위로의 번역과정이 필요하다. 곧 인지과정과 표현과정이다. 인지과정은 이제 과학의 대상에 편입되어 공학적 호기심과 경쟁을 하고 있지만, 표현과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줄곧 함께 해왔다. 미술, 음악, 무용, 문학, 철학, 수학, 건축 등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무용이란 몸을 통한 나의 생각의 표현이다. 안무 Choregraphy는 나의 이야기를 일련의 몸의 움직임으로 디자인하는 예술 장르다. 서대표의 경험담을 들어면 안무의 개념이 이해가 쉬워진다. 예를들어, 서대표가 경험했던 한 안무가의 요구사항은 이러했단다. ‘우리는 지금 전자레인지 안에 있는 버터예요. 전자레인지 속에서 30초 후의 느낌을 몸으로 표현해 주세요.’라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그 안무가의 표현은 이러했다고 한다. ‘형태는 남아있지만 건드리면 녹아내리는 버터’라고. ^^*

-여기서, 질문 하나가 강하게 뇌리를 밀고 들어온다. 내가 미처 생각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현대인들은 문자언어와 음성언어의 세계의 갇힌 포로다. 자신들이 언어창고 속에 있는 어휘들의 포로다. 모든 생각은 뇌 속에서 언어로 표현된다고 뇌과학이 말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언어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존재함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생각 바깥의 ‘그 무엇’이 존재한다. 여기가 ‘예술’의 존재가치의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전자레인지 속 30초 후의 버터의 상태를 몸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무용이요, 그림으로 표현해보겠다는 것이 미술이고, 리듬으로 표현해보겠다는 것이 음악이고,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은 기술이고, 분자의 상태로 표현해보려 하는 것이 과학이다. 모든 것의 궁극은 하나로 관통함을 느낀다.

  

2. 몸짓으로 말하는 소통방식

-우리는 몸의 모든 부분을 동원하여 말한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 발성과 동반하여 몸짓으로 말하는 것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같이 했다. 그러나, 지금 현대인의 관점에서 몸으로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감각의 퇴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또 느껴진 감각이 어떻게 지각되는지를 제대로 모른다. 또 지각된 감각들은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보태져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지식화되는 인지과정을 거친다. 또한, 이러한 인지능력은 감각을 알아채는 감성능력의 차이에 따라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와 다른 대상과의 소통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겠다. 첫째는, 오감이라는 순수한 감각레벨에서의 감각교환이고, 둘째는 지각레벨에서의 지각교환이고 셋째는 인지레벨의 인지교환이고, 넷째는 추상의 개념레벨에서의 개념교환이다. 몸짓으로의 대화는 어디까지가 가능할까? 몸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소통의 단계와 그 궤를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단어의 의미 상으로는 감각을 행동화하는 것, 지각을 행동화하는 것, 인지를 행동화하는 것, 개념을 행동화하는 것 등으로 서술할 수 있겠다. 

-또 한가지 뺴놓을 수 없는 것이 리듬감이나 화모니나 직관력이나 대상에 대한 좋고 싫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감정 등이다. 리듬감이나 하모니는 개별적인 소리감각의 조직화나 구조화에 대한 알아챔이다. 직관력은 모든 개별 감각들의 조합에 대한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이고, 감정은 개별 감각 또는 감각의 조합에 대한 좋고 싫은 정도의 느낌이다. 희노애락애오욕이 곧 감정이다.

-이렇게 우리 몸과 뇌가 반응하는 대상을 분류해 놓고 보면, 무용이나 춤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는 엄청나게 광범위하다. 광범위한 표현의 영역에 대하여 사람마다 감응하고 이해하고 알아차리는 정도의 차이는 분명하게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 소통레벨에서의 개인적인 감응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예술이 끊임없이 표현의 엣지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자 예술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위안 받고 싶은 것이 모두 다르고 남이 알아 줬으면 하는 ‘그 무엇’은 천차만별이다. 예술은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그 무엇’의 터치를 위해서 존재한다. 단 한사람의 일순간의 위로를 위해서라도 존재의 가치가 있다. 이성복 시인께서, 세상에 인간의 말 이전의 말이 존재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예술은 인간이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상관하지 않고 인간의 말 이전의 말을 표현하려고 존재한다. 엣지있게 표현하려고 존재한다. 무용에 끝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언어 이전의 말이 존재하기에. 이런 이유로, 지금 내가 이해하지 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 무용이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지금 어떤 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무용이 예술적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이유에서, 예술이 보편적 이해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시인이 어휘 하나의 의미를 곱씹고 곱씹듯이 무용가들이 동작 하나 하나의 의미를 재해석 해보는 것은 우매한 인간들의 이해력을 위한 숭고한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3. 과학과 무용의 만남

-서 대표님은 대전을 전 세계 컨템포러리 무용의 메카로 만들고 싶어 하신다. 컨템포러리 무용을 쉽게 즉흥춤으로 번역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흥춤은 즉시적인 상호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용은 연극과의 협업도 가능하고, 음악과도 협업이 가능하고, 치료와도 협업이 가능하다. 실제로 서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FCD무용단의 창작스튜디오에서는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서 대표께서 직접 즉흥춤을 보여주신다. 조용히 관객의 입장에서 안무가의 몸사위를 바라본다. 또 다른 무대, 나의 집에서는 요즘 한창 유행인 라인댄스 스텝을 밟으며 신나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본다. 공학자의 시각으로 두사람의 행위를 바라보며, 역공학 (reverse engineering)을 생각한다. 역공학이란 어떤 대상의 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대상의 원리를 거꾸로 밝혀내는 것이다. 춤과 몸사위와 얼굴의 표정과 열기를 동시에 보고 읽는다. 시작이 어떤 동기였던 상관없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춤의 일련의 몸동작이 입력이고 나타나는 표정들이 출력이다. 해골바가지 속의 뇌는 어떤 상태를 거쳐가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감각의 입력을 받거나 지성의 작동에 의하여 행동을 계획하는 생각을 하고 그 계획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역의 관점에서 행동이 뇌의 행동계획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감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태극권에서는 그러한 몸의 수련을 통해서 말초신경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과학과 예술과 무술간의 공통의 관심사가 생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식물이 음악을 즐기고 사람들의 행동에 반응한다는 주장도 최근에 나오기 시작한다. 식물의 음악에 대한 반응을 과학적으로 표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면, 무용 또한 유사한 실험을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서대표가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예술을 인간이 아닌 식물과 짐승에까지 대상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것이 서 대표님가 꿈꾸는 한국의 독보적인 컨템포러리 무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대표는 한국의 민간 독립 무용단 연합과 함께 8월21일부터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개최되는 국제 컨템포러리 댄스 축제(New Dance for Asia–NDA International Festival)을 유치하고, 이 축제에 참가하는 국제적 무용가들을 합숙훈련인 Dancer’s Nest Asia 프로그램을 대전에 유치했다고 한다. Dancer’s Nest Asia팀은 한국·홍콩·일본·마카오 예술가 3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번 창작물의 주제를 '과학과 예술의 융합'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과학을 예술로 표현해 내는 도전을 과학도시 대전에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과학기술자들이나 단체들과 Dancer’s Nest Asia 팀의 공연 유치, 예술가들과 함께 체험 프로그램 만들기, 댄싱 교육 프로그램 만들기, 과학기술자들이 직접 안무가가 되어보는 프로그램 만들기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포함하고 있단다. 과학기술자들이 용기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싶다. 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하는 용기는 기본일테니까. ## 

  

끝없는 칼날을 갈고 있는 Choregrapher 서윤신 대표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대전을 컨템포러리 무용의 메카로 만들어 보시겠다는 큰 그림의 실현과 과학과 예술의 융합의 뜻이 이루어지길 함께 응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