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도래하는 초연결시대의 본질을 통찰하면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의 신기축을 탐색하는 새통사입니다.
2주간의 달콤한 봄 방학을 마친 이번 119차 새통사 모임에서는 충남대 정은혜 교수님을 모시고 한국 현대무용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겼습니다. 정은혜 교수님은 창단 32년 (1986년 창단)의 (사)정은혜민족무용단과 함께 매년 40~50차례의 국내와 국제 공연을 치르내시기에 평소에 정말 만나뵙기 힘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통사를 방문해 주셔서 과학기술인들과의 만남을 기꺼이 허락해 주신 것은 정 교수님의 평소 춤에 대한 사랑의 발로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특히, 춤에 대한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춤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체조-국민체조보다도 훨씬 재미있고 부드럽고 리듬감을 느낄 수 있음-까지 만들어 오셔서, 함께 땀을 흘리며 호흡해 주시는 모습에서 정교수님께서 얼마나 무용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계시는지 몸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대전 지역의 역사, 문화, 전통, 특징 등을 바탕으로 대전을 무용으로 표현하는 <大田十舞>을 20년동안의 노력 끝에 완성해 내신 대전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보물이신 분이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1. 정은혜 교수의 춤사랑
-어릴 때부터 끼가 많으셨다고 하셨다. 서너 살 때부터 음악만 나오면 몸을 꼬거나 흔들며 춤을 추었던 던 것으로 기억하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언니가 다니던 학교의 학예회 연극에 쫓아다니며 공연 보는 걸 즐겼고, 한번은 학예회 당일 출연자가 아파서 대역을 찾자 6세 꼬마로 언니들이 하는 공연의 배역을 지원해 무대에 섰을 정도로 끼가 많았다고 하신다.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무용을 잠시 접은 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자신의 고집스러움으로 무용가로 설 수 있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생활하면서, 24시간 춤만을 생각하는 정은혜 교수의 삶을 보고, 인정을 해주셨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5살부터 시작한 무용 역정에서 상상해볼 수 있듯이 정 교수님을 몇마디 글자로 다 소개하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교수님을 통상적인 개념으로 소개를 해드리자면, 충남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사)정은혜민족무용단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소위원역임, CID 유네스코 국제 무용협회 이사, 중요무형문화재 제 39호 처용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살풀이 이수자, 대한민국문화재전문위원, 2005 PAF 올해의 안무가상, 2006 스프링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 2006 한국춤비평가협회 특별상, 2011년 대한민국 무용대상 대상, 2013년 '계룡이 날아오르샤'로 한국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 2014년 한국예술가평론협회 최우수예술가상 등을 수상하신 최고의 예술가이시다.
-정교수님의 이러한 두드러진 활약에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원로 대가들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남다른 저력의 소유가 근원인 것으로 읽힌다. 정 교수님은 원로무용가 김백봉을 사사하여 20여 년 동안 부채춤ㆍ산조ㆍ화관무ㆍ장고춤 등 신무용의 모든 것 및 창작무용기법을 익혔고, 무용이론가 故안제승 교수로부터 무용이론, 인간문화재 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처용무ㆍ춘앵전 등 궁중정재, 인간문화재 故 한영숙 선생으로부터 살풀이ㆍ승무 등 민속무용, 故이정범 선생으로부터 농악의 기법, 故최현 선생으로부터 비상ㆍ연가 등의 명무를 전수받았으며,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이매방류 춤을 전수받았다고 알려져 있음이 확인된다. 정 교수님의 지난한 시간이 읽혀지는 부분이다.
-정 교수님에 대한 최근 무용계의 평가가 멋스럽다. 흥이 있다. 맵씨가 뛰어나다. 재질을 타고 났다. 정갈하다. 엄격하다. 호방한 춤태를 지닌다. 끈끈한 내적 응집력이 있다. ....... 무용에 문외한 인 간사가 범접할 수 없는 찬사의 성찬이다. 우리만 모르고 있는 정은혜 교수님이시다.
-춤에 대한 정은혜 교수님의 생각은, ‘<월간 춤> 500호 기념시화집-춤이 있는 풍경’에 쓰신 글로 대신해보고 싶다.
언제나 그리고 그러나/정은혜 (한국춤)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춤을 본다
누구는 춤을 말하고, 누구는 그 춤을 쓴다
언제나 두 팔을 벌려 태양을 품는 열정으로
그리고 발끝으로 달빛을 들어 올리는 정신으로
그러나 모든 걸 비워야 비로소 채워지는 춤
언제나 춤을 추며 잼나게 노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리고 반짝이는 진실을 자유롭게 전하는 벅찬 상상
그러나 뼈를 깎는 아픔과 치열함으로 춤을 견디는 사람밖에
언제나 어머니는 너는 등이 넓다며 어깨를 비틀라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넌 춤추기 잘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오가는 몸짓, 애절한 그리움에 떨리는 몸
언제나 하늘 땅 산 물 공기의 흐름이 새 춤 새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순수한 날개짓
자연의 몸짓 속에 또 여름이 갔다
그러나 나 홀로 질긴 미련은 남았고 영원한 소망은 아직...
2. 인간은 말을 한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이룩해놓은 위대한 발견들로부터, 우리 몸에 137억년의 우주역사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음을 안다. 137억년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고 또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 몸의 구조를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외부의 자극에 몸이 직접적으로 반응하다, 점차 본능적인 움직임을 억제하는 이성이 탄생하고, 타자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감성이 발달하고, 기억을 통하여 타자의 의도를 학습하고 타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인식능력을 장착하고, 나아가 기억된 자극을 스스로 발동시켜 실제 체험하지 않고도 경험을 통합하는 지성까지 갖추게 되었음을 안다.
-인간은 우주의 다이내믹스의 축소판 이기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때문에 인간은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다. 그런데, 인간의 말에는 입으로 하는 말이 있고 문자로 하는 말이 있고 그림으로 하는 말이 있고 손으로 하는 말이 있고 눈으로 하는 말이 있고 몸짓으로 하는 말이 있다. 137억년의 우주 역사에서 시도해 봤을 법한 모든 것을 통해서 말을 한다. 그래서, Natural literacy, Physical literacy, Visual literacy, Character literacy이라는 어휘들이 탄생한다. 최근에는 인간이 창조한 새로운 자연인 ‘디지털 문명‘속에 회자되는 digital literacy까지 존재한다. 다양한 형태의 언어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 말하고 싶은 것을 몸으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음악으로도 그림으로도 다 전달할 수 없고 문자로도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연 속의 모든 언어를 다 읽고 쓸 수 잇을 때, 완전한 소통이 있을 수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소통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역설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위하여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글자. 입, 그림, 음악 등-을 동원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춤’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춤’의 사전적 의미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가락에 맞추어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을 춤이라고 설명한다. 두가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가락’과 ‘’절로‘라는 단어다. ’가락‘은 소리의 높낮이가 길이나 리듬과 서로 어울려 이루어지는 음의 흐름이라고 풀이된다. 춤은 음의 흐름과 항상 함께 한다. 조금 더 나아가보자. 우리는 춤보다는 ’무용‘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무용이란 또 무엇인가, 무용은 ’음악이나 박자에 맞추어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감정과 의식을 표현하는 행위예술‘로 풀이된다. 둘을 종합해보면, 춤은 무용이라는 행위예술을 위한 하나의 표현언어다. 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이나 박자를 이용하여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몸의 문자다.
-‘절로 흥겨워 한다’는 두가지의 높은 수준의 수련이 필요함을 읽을 수 있다. 무한대의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과 그 미세한 감각에 일일이 대응하는 섬세한 운동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무용이라는 예술성 또한 사유와 감각과 운동에 대한 각각의 수준과 조화에 의하여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수준 높은 무용은 섬세한 사유에서 출발해서 민감한 감각과 세밀한 운동의 엣지있는 조화에서 탄생함을 말해준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이룩한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이 무용 또한 지난한 인고와 축적의 시간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정은혜 교수님의 무용은 주위로부터 독창성을 폭넓게 인정받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정 교수님은 세상에 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품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으로 세상 사람들과 이야기해 볼 공간이 여의치 않음을 안타까워하신다.
-인간은 말을 해야 하는 존재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말이라고 같은 말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감동을 주는 말은 어렵다. 인간의 감정과 의지의 저 밑바닥 한켜한켜까지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말이 필요하다. 섬세한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를 돕고 사랑을 싹트게 한다. 섬세한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의되는 인간과 인간세상을 멋스럽게 한다. 무용과 춤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춤 또한 사람이 그리는 무늬이기 때문이다.
3. 변화의 시작은 연결이다.
-이번 새통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2주간의 봄 방학도 원인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면문화가 한 몫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몸의 언어-춤’이라는 주제에서 풍기는 것이 남들 앞에서 또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으로 춤을 춰보기가 있을 것임을 예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촉의 발동이리라 싶다. 우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기에, 몸으로 춤을 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 교수님께서 특별히 고안해 오신 체조 (여기서는 춤 체조라 부르겠다.)를 반복해서 함께 따라하면서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의 쓰임에 따른 뻐근함, 몸의 동작에 따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깊은 들 숨쉬기와 날 숨쉬기, 동작의 강약, 고저, 대소를 실제 해보면서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과 함께, 어느 듯 춤에 대항 저항감(?)이 사라지고 있음을 드낄 수 있었다.
-정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공연은 지금가지 수백차례 해오셨지만, 이번과 같이 대중을 앞에 놓고 춤에 대한 강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시란다. 일년에 40~50차례의 공연을 치른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새통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만족했듯이, 이번의 강연 자체가 일반 대중들에게 춤에 대한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멋진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혹신이 든다.
-이렇게 낯선 두 분야의 사람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만났다.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집중하며 각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곤 이제 두 분야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알게 되었다.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과학기술계에서 무용계로의 접근이 어려운 이유는 춤과 무용에 대한 이해의 부족 이전에 무용계의 스타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일 것이고, 그 반대로 무용계는 과학기술계에 무용을 발표할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점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은혜무용단에서 시행했던 표준연의 양반춤 강습 프로그램의 좋은 선례가 있다. 또 5월말에 있을 정은혜무용단의 공연을 과학기술계가 인지했다는 것이 변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 교수님은 대전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창작 한국 무용인 <大田十舞>라는 것을 이미 완성해 놓으셨다. 최고예술가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 대덕특구에서 활동하는 과학기술계가 먼저 <대전십무>를 찾아주고, 무용계와 과학기술계가 함께 무용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면서, <대전십무 2>, <대전십무 3>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대전은 미술전만이 아니라 예술전으로, 예술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과학기술계와 함께 하는 유니크한 예술제까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보게 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과학기술계가 가지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예술계의 결합도 얼마든지 꿈꿔볼 수 있으리라. ##
그러나의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리고의 한결 같은 정성을 다 하시기에 언제나 꿈을 이루어 가시는 정은혜 교수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춤의 글로벌화와 젊은 후학들의 자유롭게 활동하는 그날이 이루어지길 함께 응원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도래하는 초연결시대의 본질을 통찰하면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의 신기축을 탐색하는 새통사입니다.
2주간의 달콤한 봄 방학을 마친 이번 119차 새통사 모임에서는 충남대 정은혜 교수님을 모시고 한국 현대무용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겼습니다. 정은혜 교수님은 창단 32년 (1986년 창단)의 (사)정은혜민족무용단과 함께 매년 40~50차례의 국내와 국제 공연을 치르내시기에 평소에 정말 만나뵙기 힘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통사를 방문해 주셔서 과학기술인들과의 만남을 기꺼이 허락해 주신 것은 정 교수님의 평소 춤에 대한 사랑의 발로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특히, 춤에 대한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춤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체조-국민체조보다도 훨씬 재미있고 부드럽고 리듬감을 느낄 수 있음-까지 만들어 오셔서, 함께 땀을 흘리며 호흡해 주시는 모습에서 정교수님께서 얼마나 무용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계시는지 몸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대전 지역의 역사, 문화, 전통, 특징 등을 바탕으로 대전을 무용으로 표현하는 <大田十舞>을 20년동안의 노력 끝에 완성해 내신 대전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보물이신 분이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1. 정은혜 교수의 춤사랑
-어릴 때부터 끼가 많으셨다고 하셨다. 서너 살 때부터 음악만 나오면 몸을 꼬거나 흔들며 춤을 추었던 던 것으로 기억하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언니가 다니던 학교의 학예회 연극에 쫓아다니며 공연 보는 걸 즐겼고, 한번은 학예회 당일 출연자가 아파서 대역을 찾자 6세 꼬마로 언니들이 하는 공연의 배역을 지원해 무대에 섰을 정도로 끼가 많았다고 하신다.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무용을 잠시 접은 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자신의 고집스러움으로 무용가로 설 수 있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생활하면서, 24시간 춤만을 생각하는 정은혜 교수의 삶을 보고, 인정을 해주셨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5살부터 시작한 무용 역정에서 상상해볼 수 있듯이 정 교수님을 몇마디 글자로 다 소개하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교수님을 통상적인 개념으로 소개를 해드리자면, 충남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사)정은혜민족무용단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소위원역임, CID 유네스코 국제 무용협회 이사, 중요무형문화재 제 39호 처용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살풀이 이수자, 대한민국문화재전문위원, 2005 PAF 올해의 안무가상, 2006 스프링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 2006 한국춤비평가협회 특별상, 2011년 대한민국 무용대상 대상, 2013년 '계룡이 날아오르샤'로 한국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 2014년 한국예술가평론협회 최우수예술가상 등을 수상하신 최고의 예술가이시다.
-정교수님의 이러한 두드러진 활약에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원로 대가들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남다른 저력의 소유가 근원인 것으로 읽힌다. 정 교수님은 원로무용가 김백봉을 사사하여 20여 년 동안 부채춤ㆍ산조ㆍ화관무ㆍ장고춤 등 신무용의 모든 것 및 창작무용기법을 익혔고, 무용이론가 故안제승 교수로부터 무용이론, 인간문화재 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처용무ㆍ춘앵전 등 궁중정재, 인간문화재 故 한영숙 선생으로부터 살풀이ㆍ승무 등 민속무용, 故이정범 선생으로부터 농악의 기법, 故최현 선생으로부터 비상ㆍ연가 등의 명무를 전수받았으며,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이매방류 춤을 전수받았다고 알려져 있음이 확인된다. 정 교수님의 지난한 시간이 읽혀지는 부분이다.
-정 교수님에 대한 최근 무용계의 평가가 멋스럽다. 흥이 있다. 맵씨가 뛰어나다. 재질을 타고 났다. 정갈하다. 엄격하다. 호방한 춤태를 지닌다. 끈끈한 내적 응집력이 있다. ....... 무용에 문외한 인 간사가 범접할 수 없는 찬사의 성찬이다. 우리만 모르고 있는 정은혜 교수님이시다.
-춤에 대한 정은혜 교수님의 생각은, ‘<월간 춤> 500호 기념시화집-춤이 있는 풍경’에 쓰신 글로 대신해보고 싶다.
언제나 그리고 그러나/정은혜 (한국춤)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춤을 본다
누구는 춤을 말하고, 누구는 그 춤을 쓴다
언제나 두 팔을 벌려 태양을 품는 열정으로
그리고 발끝으로 달빛을 들어 올리는 정신으로
그러나 모든 걸 비워야 비로소 채워지는 춤
언제나 춤을 추며 잼나게 노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리고 반짝이는 진실을 자유롭게 전하는 벅찬 상상
그러나 뼈를 깎는 아픔과 치열함으로 춤을 견디는 사람밖에
언제나 어머니는 너는 등이 넓다며 어깨를 비틀라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넌 춤추기 잘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오가는 몸짓, 애절한 그리움에 떨리는 몸
언제나 하늘 땅 산 물 공기의 흐름이 새 춤 새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순수한 날개짓
자연의 몸짓 속에 또 여름이 갔다
그러나 나 홀로 질긴 미련은 남았고 영원한 소망은 아직...
2. 인간은 말을 한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이룩해놓은 위대한 발견들로부터, 우리 몸에 137억년의 우주역사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음을 안다. 137억년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고 또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 몸의 구조를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외부의 자극에 몸이 직접적으로 반응하다, 점차 본능적인 움직임을 억제하는 이성이 탄생하고, 타자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감성이 발달하고, 기억을 통하여 타자의 의도를 학습하고 타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인식능력을 장착하고, 나아가 기억된 자극을 스스로 발동시켜 실제 체험하지 않고도 경험을 통합하는 지성까지 갖추게 되었음을 안다.
-인간은 우주의 다이내믹스의 축소판 이기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때문에 인간은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다. 그런데, 인간의 말에는 입으로 하는 말이 있고 문자로 하는 말이 있고 그림으로 하는 말이 있고 손으로 하는 말이 있고 눈으로 하는 말이 있고 몸짓으로 하는 말이 있다. 137억년의 우주 역사에서 시도해 봤을 법한 모든 것을 통해서 말을 한다. 그래서, Natural literacy, Physical literacy, Visual literacy, Character literacy이라는 어휘들이 탄생한다. 최근에는 인간이 창조한 새로운 자연인 ‘디지털 문명‘속에 회자되는 digital literacy까지 존재한다. 다양한 형태의 언어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 말하고 싶은 것을 몸으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음악으로도 그림으로도 다 전달할 수 없고 문자로도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연 속의 모든 언어를 다 읽고 쓸 수 잇을 때, 완전한 소통이 있을 수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소통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역설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위하여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글자. 입, 그림, 음악 등-을 동원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춤’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춤’의 사전적 의미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가락에 맞추어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을 춤이라고 설명한다. 두가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가락’과 ‘’절로‘라는 단어다. ’가락‘은 소리의 높낮이가 길이나 리듬과 서로 어울려 이루어지는 음의 흐름이라고 풀이된다. 춤은 음의 흐름과 항상 함께 한다. 조금 더 나아가보자. 우리는 춤보다는 ’무용‘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무용이란 또 무엇인가, 무용은 ’음악이나 박자에 맞추어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감정과 의식을 표현하는 행위예술‘로 풀이된다. 둘을 종합해보면, 춤은 무용이라는 행위예술을 위한 하나의 표현언어다. 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이나 박자를 이용하여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몸의 문자다.
-‘절로 흥겨워 한다’는 두가지의 높은 수준의 수련이 필요함을 읽을 수 있다. 무한대의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과 그 미세한 감각에 일일이 대응하는 섬세한 운동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무용이라는 예술성 또한 사유와 감각과 운동에 대한 각각의 수준과 조화에 의하여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수준 높은 무용은 섬세한 사유에서 출발해서 민감한 감각과 세밀한 운동의 엣지있는 조화에서 탄생함을 말해준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이룩한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이 무용 또한 지난한 인고와 축적의 시간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정은혜 교수님의 무용은 주위로부터 독창성을 폭넓게 인정받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정 교수님은 세상에 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품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으로 세상 사람들과 이야기해 볼 공간이 여의치 않음을 안타까워하신다.
-인간은 말을 해야 하는 존재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말이라고 같은 말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감동을 주는 말은 어렵다. 인간의 감정과 의지의 저 밑바닥 한켜한켜까지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말이 필요하다. 섬세한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를 돕고 사랑을 싹트게 한다. 섬세한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의되는 인간과 인간세상을 멋스럽게 한다. 무용과 춤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춤 또한 사람이 그리는 무늬이기 때문이다.
3. 변화의 시작은 연결이다.
-이번 새통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2주간의 봄 방학도 원인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면문화가 한 몫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몸의 언어-춤’이라는 주제에서 풍기는 것이 남들 앞에서 또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으로 춤을 춰보기가 있을 것임을 예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촉의 발동이리라 싶다. 우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기에, 몸으로 춤을 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 교수님께서 특별히 고안해 오신 체조 (여기서는 춤 체조라 부르겠다.)를 반복해서 함께 따라하면서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의 쓰임에 따른 뻐근함, 몸의 동작에 따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깊은 들 숨쉬기와 날 숨쉬기, 동작의 강약, 고저, 대소를 실제 해보면서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과 함께, 어느 듯 춤에 대항 저항감(?)이 사라지고 있음을 드낄 수 있었다.
-정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공연은 지금가지 수백차례 해오셨지만, 이번과 같이 대중을 앞에 놓고 춤에 대한 강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시란다. 일년에 40~50차례의 공연을 치른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새통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만족했듯이, 이번의 강연 자체가 일반 대중들에게 춤에 대한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멋진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혹신이 든다.
-이렇게 낯선 두 분야의 사람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만났다.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집중하며 각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곤 이제 두 분야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알게 되었다.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과학기술계에서 무용계로의 접근이 어려운 이유는 춤과 무용에 대한 이해의 부족 이전에 무용계의 스타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일 것이고, 그 반대로 무용계는 과학기술계에 무용을 발표할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점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은혜무용단에서 시행했던 표준연의 양반춤 강습 프로그램의 좋은 선례가 있다. 또 5월말에 있을 정은혜무용단의 공연을 과학기술계가 인지했다는 것이 변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 교수님은 대전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창작 한국 무용인 <大田十舞>라는 것을 이미 완성해 놓으셨다. 최고예술가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 대덕특구에서 활동하는 과학기술계가 먼저 <대전십무>를 찾아주고, 무용계와 과학기술계가 함께 무용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면서, <대전십무 2>, <대전십무 3>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대전은 미술전만이 아니라 예술전으로, 예술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과학기술계와 함께 하는 유니크한 예술제까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보게 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과학기술계가 가지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예술계의 결합도 얼마든지 꿈꿔볼 수 있으리라. ##
그러나의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리고의 한결 같은 정성을 다 하시기에 언제나 꿈을 이루어 가시는 정은혜 교수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춤의 글로벌화와 젊은 후학들의 자유롭게 활동하는 그날이 이루어지길 함께 응원 드립니다.